잭슨군 (미주리주)은 미주리주에 위치한 군으로, 1826년 앤드루 잭슨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원래 오세이지족의 땅이었으며, 프랑스, 스페인, 미국의 지배를 거쳐 루이지애나 매입으로 미국에 편입되었다. 서부 개척 시대에는 산타페, 오리건, 캘리포니아 트레일의 출발지로 번성했으며, 남북 전쟁 중에는 격전지였다. 캔자스시티가 잭슨군의 군청 소재지이며, 잭슨군은 몰몬교 역사와도 관련이 깊다. 2020년 인구는 717,204명이며, 캔자스시티를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 시설과 교육 기관이 위치하고 있다. 잭슨군은 한국과의 경제, 문화 교류 잠재력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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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군은 오랫동안 오세이지 원주민들의 터전이었다. 최초로 알려진 유럽 탐험가들은 프랑스의 모피 사냥꾼들로, 미주리 강을 탐험과 지역 미국 원주민 부족과의 교역을 위한 통로로 사용했다. 잭슨군은 1763년 프랑스-인디언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할 때까지 뉴 프랑스의 일부였다. 그 후 프랑스는 미시시피 강 서쪽의 이 영토를 영국의 동맹국인 스페인에 할양했다. 1800년 스페인은 산일데폰소 조약을 통해 프랑스의 강요로 루이지애나 준주 (현재의 잭슨군이 그 일부를 형성)를 프랑스에 반환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북미에서의 권리를 포기하고, 1803년 루이지애나 매입을 통해 그 영토를 미국에 매각했다.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을 대신하여, 탐험가 메리웨더 루이스와 윌리엄 클라크는 1804년 유명한 루이스 앤드 클라크 탐험을 통해 잭슨군을 통과하며 루이지애나 준주의 인구, 재산 및 자원을 조사했다. 그들의 보고서는 잭슨군의 현재 경계 내 강을 따라 "높고 지배적인 위치"를 나타냈고, 1808년에는 오세이지 요새가 그곳에 건설되었다. 이 요새와 무역 거점은 루이지애나 매입 지역 내 최초의 미국 군사 시설 중 하나였으며, 1822년까지 운영되었다.
1821년 잭슨군은 새로 편입된 미주리주에 포함되었다. 1826년 12월 15일에 조직되었으며, 1812년 전쟁의 군사 영웅이자 테네시 출신 미국 상원 의원이었으며 1829년에 미국 대통령이 된 앤드루 잭슨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5][6] 잭슨군의 군청 소재지는 인디펜던스로 지정되었다. 서부 탐험과 팽창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인디펜던스는 산타페 길, 오리건 길, 캘리포니아 길의 출발점이 되었다. 미국 남북 전쟁 이후 이 지역에 철도가 건설되면서 인근 미주리주 캔자스시티가 결국 인디펜던스를 능가했지만, 두 마을 모두 군청 소재지로 남아 있다.
1838년, "타운 컴퍼니"는 잭슨군 북부의 미주리 강을 따라 작은 토지를 매입하여 "웨스트포트 랜딩"(오늘날 리버 마켓 지구)을 설립했다. 웨스트포트 랜딩 밖의 지역은 1839년 지역 칸자 또는 카우 부족의 이름을 따서 "캔자스 타운"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1]
몰몬교는 1830년 뉴욕주 북부에서 설립되었으나, 1831년 조셉 스미스가 미주리-캔자스 경계 지역이 종말론적 "새 예루살렘"이 될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잭슨군이 몰몬교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7] 1831년 여름, 스미스와 그의 동료들은 잭슨군이 그 장소임을 공식적으로 선포했다.[9] 그러나 종교적, 문화적 차이로 인해 기존 정착민들과 갈등이 발생했다. 미주리강을 따라 정착한 초기 정착민들은 대부분 남부 출신으로, 노예와 친노예 제도 관습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뉴욕과 북부 주 출신의 몰몬교도들이 노예 폐지론자라고 믿었다.[10] 폭도들은 폭력을 사용하여 몰몬교도들을 잭슨군에서 인근 미주리 카운티로 몰아냈으며, 1833년 11월 6일까지 잭슨군을 떠나라는 통지를 했다. 1833년 11월 23일, 잭슨군에 남은 소수의 후기 성도 주민들은 잭슨군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다.[46] 1839년 중반, 미주리 몰몬 전쟁 이후 몰몬교도들은 미주리주에서 완전히 추방되었다.
남북 전쟁 기간 동안 잭슨 군은 여러 차례의 교전이 벌어진 곳이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1864년의 웨스트포트 전투로, "미주리의 게티즈버그 전투"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전투에서 북군의 승리는 미주리에 대한 북부의 지배를 확고히 하였고, 남부 동맹군 장군 스터링 프라이스의 미주리 원정 실패로 이어졌다.[4]
잭슨 군은 연방군 장군 토머스 유잉 주니어의 일반 명령 제11호 (1863년)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잭슨 군 내에는 다수의 남부 동맹 지지자들이 거주하고 있었고, 이 지역에서 남부 동맹의 작전이 빈번하게 이루어지자, 연방군 사령부는 남부 동맹 게릴라들에게 모든 지역 지원을 박탈하기로 결정했다. 유잉의 포고령은 사실상 잭슨 군의 농촌 지역을 비우게 했으며, 잭슨 군과 인접한 카운티의 상당 부분을 불태우는 결과를 낳았다.
19세기 후반, 캔자스시티는 철도 부설과 가축 사육장 건설로 급속히 발전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는 재즈와 블루스의 중심지가 되었고, 홀마크 카드사의 본사가 있었으며, 월트 디즈니의 최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생겨났다. 대공황 중에도 다른 지역보다 비교적 잘 헤쳐나갔다. 지역 정계의 보스인 토머스 펜더개스트가 5000만달러 규모의 공공 사업을 유치하여 수천 개의 일자리를 제공했다. 펜더가스트가 지원한 인물 중에는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해리 S. 트루먼이 있었다. 트루먼은 1926년 펜더가스트의 지원으로 잭슨 카운티 판사에 선출되었고, 이후 미주리 주 미국 상원 의원, 미국 부통령을 역임했으며, 1945년에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사망으로 제33대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도시 스프롤 현상이 잭슨 카운티에서도 시작되었다. 미주리주 인디펜던스, 미주리주 블루스프링스, 미주리주 리스서밋이 이 시기에 성장했으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2024년에는 노예 소유주를 우상화하지 않기 위해 앤드루 잭슨의 동상을 철거할지에 대한 투표가 진행되었다.
2. 1. 초기 역사
잭슨군은 오랫동안 오세이지 원주민들의 고향이었다. 최초로 알려진 유럽 탐험가들은 프랑스의 모피 사냥꾼들로, 미주리 강을 탐험과 지역 미국 원주민 부족과의 교역을 위한 통로로 사용했다. 잭슨군은 1763년 프랑스-인디언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할 때까지 뉴 프랑스의 일부로 간주되었다. 그 후 프랑스는 미시시피 강 서쪽의 이 영토를 영국의 동맹국인 스페인에 할양했다. 1800년 스페인은 산일데폰소 조약을 통해 프랑스의 강요로 루이지애나 준주 (현재의 잭슨군이 그 일부를 형성)를 프랑스에 반환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북미에서의 권리를 포기하고, 1803년 루이지애나 매입을 통해 그 영토를 미국에 매각했다.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을 대신하여, 탐험가 메리웨더 루이스와 윌리엄 클라크는 1804년 유명한 루이스 앤드 클라크 탐험을 통해 잭슨군을 통과하며 루이지애나 준주의 인구, 재산 및 자원을 조사했다. 다른 보고서와 함께, 그들의 보고서는 잭슨군의 현재 경계 내 강을 따라 "높고 지배적인 위치"를 나타냈다. 1808년에는 오세이지 요새가 그곳에 건설되었다. 이 요새와 무역 거점은 루이지애나 매입 지역 내 최초의 미국 군사 시설 중 하나였으며, 1822년까지 운영되었다.
1821년 잭슨군은 새로 편입된 미주리주에 포함되었다. 잭슨군은 1826년 12월 15일에 조직되었으며, 1812년 전쟁의 군사 영웅이자 테네시 출신 미국 상원 의원이었으며 1829년에 미국 대통령이 된 앤드루 잭슨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5][6] 잭슨군의 군청 소재지는 샘 근처의 작은 정착지였던 인디펜던스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서부 탐험과 팽창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인디펜던스는 세 개의 주요 서부 개척로인 산타페 길, 오리건 길, 캘리포니아 길의 출발점이 되었다. 미국 남북 전쟁 이후 이 지역에 철도가 건설되면서 인근 미주리주 캔자스시티가 결국 인디펜던스를 능가했지만, 두 마을 모두 군청 소재지로 남아 있다.
1838년, "타운 컴퍼니"는 잭슨군 북부의 미주리 강을 따라 작은 토지를 매입하여 "웨스트포트 랜딩"(오늘날 리버 마켓 지구로 알려짐)을 설립했다. 웨스트포트 랜딩 밖의 지역은 1839년 지역 칸자 또는 카우 부족의 이름을 따서 "캔자스 타운"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2. 2. 앤드루 잭슨과 군의 형성
잭슨군(미주리주)이 된 지역에는 오세이지족 아메리카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 최초로 이 지역에 들어온 유럽인은 프랑스인 사냥꾼이었으며, 미주리 강을 탐험과 아메리카 원주민과의 교역 통로로 사용했다. 이 지역은 누벨 프랑스의 일부였지만, 영국이 프랑스-인디언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이 지역을 영국의 동맹국인 스페인에 양도했다. 1800년 산일데폰소 조약에 의해, 스페인은 프랑스에 루이지애나 영토를 반환했고, 프랑스는 1803년 루이지애나 매입을 통해 미국에 매각했다.
메리웨더 루이스와 윌리엄 클라크 탐험가가 1804년 탐험으로 잭슨군을 통과했다. 그들의 보고서에서, 현재의 잭슨군 안의 강을 "내려다보는 장소"로 묘사된 곳에 1808년 오세이지 요새가 세워졌다. 이 요새와 교역 거점이 루이지애나 매입 영토에서 최초의 미국 군사 시설이 되었으며, 1822년까지 사용되었다.
1821년, 잭슨군은 새롭게 주로 승격된 미주리주의 일부가 되었다. 1826년 12월 15일에 조직되었으며, 군의 명칭은 당시 테네시주 선출 미국 상원의원이자 후에 제7대 미국 대통령이 된 앤드루 잭슨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군청 소재지는 인디펜던스로 지정되었지만, 당시에는 샘 근처의 작은 마을에 불과했다. 그러나 서방으로의 탐험과 확장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인디펜던스는 산타페 트레일, 오리건 트레일, 캘리포니아 트레일이라는 3개의 주요 길의 출발점이 되었다. 남북 전쟁과 철도 부설로 인해 근처의 캔자스시티가 규모 면에서 인디펜던스를 넘어섰고, 두 번째 군청 소재지가 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 3. 서부 개척 시대의 중심지
1821년, 잭슨군은 새롭게 주로 승격된 미주리주의 일부가 되었다. 1826년 12월 15일에 조직되었으며, 군의 명칭은 당시 테네시주 선출 미국 상원의원이자 후에 제7대 미국 대통령이 된 앤드루 잭슨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군청 소재지는 인디펜던스로 지정되었지만, 당시에는 샘 근처의 작은 마을에 불과했다. 그러나 서방으로의 탐험과 확장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인디펜던스는 산타페 트레일, 오리건 트레일, 캘리포니아 트레일이라는 3개의 주요 길의 출발점이 되었다.[1]남북 전쟁과 철도 부설로 인해 근처의 캔자스시티가 규모 면에서 인디펜던스를 넘어섰고, 두 번째 군청 소재지가 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1]
1838년, 잭슨군 북부 미주리 강변의 작은 땅이 "타운 컴퍼니"에 의해 매입되어, 웨스트포트 랜딩이 되었고, 오늘날의 리버 마켓 지역이 되었다.[1] 웨스트포트 랜딩 외곽의 지역은 1839년에 칸자족 아메리카 원주민을 기려 "칸자스 타운"으로 개명되었다.[1] 이 마을은 1850년에 잭슨군에 의해 인가되었고, 1853년에는 미주리주에 의해 "시티 오브 캔자스"로 법인화되었다.[1]1889년, 시의 인구는 6만 명이 되었고, 새로운 헌장을 채택하여 캔자스시티로 개명했다.[1]1897년, 캔자스시티는 웨스트포트를 흡수했다.[1]
2. 4. 몰몬교와의 갈등
몰몬교는 1830년 뉴욕주 북부에서 설립되었으나, 1831년 3월 조셉 스미스가 미주리-캔자스 경계 지역이 종말론적 "새 예루살렘"이 될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잭슨군이 몰몬교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7] "새 예루살렘"의 중심지는 인디펜던스였다.[8] 1831년 여름, 스미스와 그의 동료들은 잭슨군이 그 장소임을 공식적으로 선포했다.[9]
교회 지도부와 신도들은 곧 잭슨군으로 이주하기 시작했지만, 종교적, 문화적 차이로 인해 기존 정착민들과 갈등이 발생했다. 미주리강을 따라 정착한 초기 정착민들은 대부분 남부 출신으로, 노예와 친노예 제도 관습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뉴욕과 북부 주 출신의 "양키" 몰몬교도들이 노예 폐지론자라고 믿었다.[10] 이에 따라 폭도들은 폭력을 사용하여 몰몬교도들을 잭슨군에서 인근 미주리 카운티로 몰아냈으며, 1833년 11월 6일까지 잭슨군을 떠나라는 통지를 했다. 1833년 11월 23일, 잭슨군에 남은 소수의 후기 성도 주민들은 잭슨군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다.[46] 1839년 중반, 미주리 몰몬 전쟁 이후 몰몬교도들은 미주리주에서 완전히 추방되었다. 그들은 남북 전쟁이 끝난 지 2년 후인 1867년까지 잭슨군이나 미주리로 상당한 수로 돌아오지 않았다.
2. 5. 남북 전쟁의 격전지
남북 전쟁 기간 동안 잭슨 군은 여러 차례의 교전이 벌어진 곳이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864년의 웨스트포트 전투로, "미주리의 게티즈버그 전투"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전투에서 북군의 승리는 미주리에 대한 북부의 지배를 확고히 하였고, 남부 동맹군 장군 스터링 프라이스의 미주리 원정 실패로 이어졌다.[4] 그 외 주목할 만한 전투로는 1862년의 첫 번째 인디펜던스 전투와 며칠 후의 론잭 전투, 그리고 1864년의 두 번째 인디펜던스 전투가 있었다. 후자의 3개 전투는 남군의 승리였다.[4]
잭슨 군은 연방군 장군 토머스 유잉 주니어의 악명 높은 일반 명령 제11호 (1863년)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잭슨 군 내에는 다수의 남부 동맹 지지자들이 거주하고 있었고, 이 지역에서 남부 동맹의 작전이 빈번하게 이루어지자, 연방군 사령부는 남부 동맹 게릴라들에게 모든 지역 지원을 박탈하기로 결정했다. 유잉의 포고령은 사실상 잭슨 군의 농촌 지역을 비우게 했으며, 잭슨 군과 인접한 카운티의 상당 부분을 불태우는 결과를 낳았다. 당시 캔자스시티에 거주하며 이 명령을 "어리석은" 일이라고 묘사한 미국 화가 조지 케일럽 빙엄에 따르면, 사람들은 "모든 방향에서 솟아오르는 짙은 연기 기둥"을 볼 수 있었으며, 그는 이것을 "나이, 성별, 인품, 지위에 관계없이 자비를 베풀지 않는 무자비한 군사 독재"의 상징이라고 불렀다. 이 명령에 따라 자행된 파괴 행위로 인해, 그 유산은 전쟁 후 수십 년 동안 잭슨 군을 괴롭혔다.[1]
2. 6. 20세기 이후
19세기 후반, 캔자스시티는 철도 부설과 가축 사육장 건설로 급속히 발전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는 재즈와 블루스의 중심지가 되었고, 홀마크 카드사의 본사가 있었으며, 월트 디즈니의 최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생겨났다. 대공황 중에도 다른 지역보다 비교적 잘 헤쳐나갔다. 지역 정계의 보스인 토머스 펜더개스트가 5000만달러 규모의 공공 사업을 유치하여 수천 개의 일자리를 제공했다. 펜더가스트가 지원한 인물 중에는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해리 S. 트루먼이 있었다. 트루먼은 펜더가스트의 조카 상사였으며, 1926년에는 펜더가스트의 지원으로 잭슨 카운티 판사에 선출되었고, 이후 미주리 주 미국 상원 의원, 미국 부통령을 역임했으며, 1945년에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사망으로 제33대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도시 스프롤 현상이 잭슨 카운티에서도 시작되었다. 귀환 병사 및 기타 노동자들이 카운티의 전원 지역에 들어선 구획에 지어진 새로운 주택으로 이주했다. 미주리주 인디펜던스, 미주리주 블루스프링스, 미주리주 리스서밋이 이 시기에 성장했으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편 캔자스시티는 이 시기에 미국의 대도시를 괴롭힌 것과 마찬가지로, 도심부의 황폐화를 경험했다. 최근에는 이러한 경향을 되돌리려는 건설 계획이 있으며, 캔자스시티 시티 마켓, 캔자스시티 웨스트포트 지구, 18번가와 바인 거리 역사 지구, 그리고 최근에는 캔자스시티 파워 앤 라이트 지구 건설 등이 유명하다.
2024년에는 노예 소유주를 우상화하지 않기 위해 앤드루 잭슨의 동상을 철거할지에 대한 투표가 진행되었다. 2021년에 동상에 추가된 명판은 동상 유지에 대한 맥락과 지원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으나,[12] 결국 인디언 이주법을 통해 아메리카 원주민을 그들의 땅에서 몰아내는 것을 지지하는 내용으로 작성되었다.[13]
3. 지리
미주리 강은 잭슨 군의 북쪽 경계를 이룬다. 다만, 291번 주도와 210번 주도 교차점 부근 및 291번 주도 교량 전체는 강 북쪽에 있다. 잭슨군은 역사적으로 하천 교통의 요충지였다.[49]
3. 1. 지리적 위치 및 면적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잭슨군의 총 면적은 약 1595.42km2이며, 이 중 약 1564.35km2는 육지이고 약 31.08km2(1.9%)는 물이다.[28]
주요 호수는 다음과 같다.
롱뷰 호
재코모 호
블루 스프링스 호
로타와나 호
프레리 리 호
타파윈고 호
미주리 강은 잭슨 군의 북쪽 경계를 이룬다(고속도로 210번과 291번의 교차로 주변 강 북쪽의 작은 부분을 제외하고, 291번 다리 전체). 이 군은 역사적으로 미국의 주요 강 여행 지점이었다.[49]
잭슨군은 미국에서 다른 주에 같은 이름의 두 개 군과 경계를 접하는 몇 안 되는 군 중 하나이다(캔자스주와 미주리주의 존슨군).
3. 3. 주요 고속도로
20px 70번 주간고속도로 대체 노선
25px 435번 주간고속도로
25px 470번 주간고속도로
25px 670번 주간고속도로
20px 24번 국도
20px 24번 국도 (사업 노선)
20px 40번 국도
20px 50번 국도
20px 56번 국도
20px 71번 국도
20px 169번 국도
20px 7번 주도
20px 150번 주도
20px 291번 주도
20px 350번 주도
3. 4. 교통
RideKC는 잭슨 군 내에서 운영되는 대중교통 시스템이다. KC 스트리트카는 캔자스시티 시내를 운행하는 노선이다. 캔자스시티 지역 교통국은 캔자스시티와 주변 지역을 연결하는 대중교통 서비스를 제공한다.
암트랙 열차는 캔자스시티 유니언역에서 이용할 수 있다. 그레이하운드 라인과 제퍼슨 라인 버스는 캔자스시티 버스 터미널에서 출발하고 도착한다.
3. 5. 국립 보호 구역
해리 S. 트루먼 국립 사적지[28]
4. 인구 통계
2000년인구 조사에 따르면, 잭슨군에는 654,880명의 인구, 266,294가구, 166,167가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인구 밀도는 1제곱마일(mi²)당 1,083명(1제곱킬로미터(km²)당 418명)이었다. 288,231개의 주택이 있었으며 평균 밀도는 1제곱마일(mi²)당 476채(1제곱킬로미터(km²)당 184채)였다.
2000년 당시 잭슨군의 인종 구성은 백인 70.10%, 흑인 23.27%, 아메리카 원주민 0.48%, 아시아인 1.28%, 태평양 제도 0.18%, 기타 인종 2.43%, 혼혈 2.25%였다. 히스패닉·라틴 아메리카인은 5.37%를 차지했다. 주요 선조 구성은 독일계 16.7%, 미국인 9.1%, 아일랜드계 8.9%, 영국계 8.8%였다.
266,294가구 중 29.9%가 18세 미만 자녀와 함께 살고 있었고, 43.4%가 결혼한 부부였으며, 14.7%는 여성 가구주(남편 없음), 37.6%는 비가족 가구였다. 전체 가구의 31.2%는 개인으로 구성되었고, 9.9%는 65세 이상인 사람이 혼자 살고 있었다. 가구당 평균 규모는 2.42명, 가족당 평균 규모는 3.05명이었다.
연령별 인구 구성은 18세 미만 25.8%, 18-24세 9.1%, 25-44세 31.1%, 45-64세 21.5%, 65세 이상 12.5%였다. 연령 중앙값은 35세였다. 성비는 여성 100명당 남성 92.9명, 18세 이상에서는 여성 100명당 남성 89.0명이었다.
가구당 중위 소득은 39,277달러, 가족당 중위 소득은 48,435달러였다. 남성의 중위 소득은 35,798달러, 여성은 27,403달러였다. 잭슨군의 1인당 소득은 20,788달러였다. 가족의 약 9.0%와 인구의 11.9%가 빈곤선 아래에 있었는데, 이 중 18세 미만은 16.4%, 65세 이상은 8.7%였다.
종교 데이터 기록 보관 협회(Association of Religion Data Archives)의 2010년 보고서에 따르면, 잭슨 군은 때때로 바이블 벨트의 북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것으로 간주되며, 복음주의 개신교가 가장 지배적인 종교이다. 잭슨 군 거주자 중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가장 지배적인 교파는 로마 가톨릭(19.51%), 남침례교(17.96%), 초교파 복음주의 기독교인(11.52%)이다.[1]
4. 1. 인구 변화 추이
잭슨군의 인구 변화[50][51][52][53][54][55][29][30][31][32][33][1]
연도
인구
%±
1830
2,823
—
1840
7,612
+169.6%
1850
14,000
+83.9%
1860
22,913
+63.7%
1870
65,011
+183.7%
1880
82,825
+27.4%
1890
160,510
+93.8%
1900
195,193
+21.6%
1910
283,522
+45.2%
1920
367,846
+29.7%
1930
470,454
+27.9%
1940
477,828
+1.6%
1950
541,035
+13.2%
1960
622,732
+15.1%
1970
654,558
+5.1%
1980
629,266
-3.9%
1990
633,232
+0.6%
2000
654,880
+3.4%
2010
674,158
+2.9%
2020
717,204
+6.4%
2021 (추정)
716,862
-0.0%
4. 2. 인종 구성
202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잭슨군의 인종 구성은 다음과 같다.[34]
잭슨군 (미주리주) 인종 구성
인종
인구수
비율
백인 (비 히스패닉계)
419,542
58.5%
흑인 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비 히스패닉계)
156,542
22%
아메리카 원주민 (비 히스패닉계)
2,713
0.4%
아시아인 (비 히스패닉계)
14,981
2.1%
태평양 섬 주민 (비 히스패닉계)
1,727
0.24%
기타/혼혈 (비 히스패닉계)
43,914
6.12%
히스패닉 또는 라틴계
77,785
10.85%
2010년 인구 조사에서는 잭슨군의 인구가 674,158명이었다. 인종 및 민족 구성은 비히스패닉 백인 63.3%, 비히스패닉 흑인 23.7%, 아메리카 원주민 0.5%, 아시아인 1.6%, 태평양 섬 주민(단독 또는 다른 인종과 혼합) 0.4%, 기타 인종 0.1%, 둘 이상의 인종을 보고한 사람 3.8%, 히스패닉 또는 라틴계 8.4%였다.
200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잭슨군에는 654,880명의 인구, 266,294가구, 166,167가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인구 밀도는 1제곱마일(mi²)당 1,083명(1제곱킬로미터(km²)당 418명)이었다. 288,231개의 주택이 있었으며 평균 밀도는 1제곱마일(mi²)당 476채(1제곱킬로미터(km²)당 184채)였다.
잭슨군의 인종 구성은 백인 70.10%, 흑인 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23.27%, 아메리카 원주민 0.48%, 아시아인 1.28%, 태평양 섬 주민 0.18%, 기타 인종 2.43%, 2개 이상의 인종 2.25%였다. 인구의 5.37%는 모든 인종의 히스패닉 또는 라틴계였다. 가계 구성원의 조상은 독일계 16.7%, 미국계 9.1%, 아일랜드계 8.9%, 영국계 8.8% 였다.
266,294가구 중 29.90%가 18세 미만의 자녀와 함께 살고 있었고, 43.40%가 함께 사는 부부였으며, 14.70%는 남편 없이 여성 가구주가 있었고, 37.60%는 비가족이었다. 전체 가구의 31.20%는 개인으로 구성되었고, 9.90%는 65세 이상인 사람이 혼자 살고 있었다. 가구당 평균 규모는 2.42명이었고 가족당 평균 규모는 3.05명이었다.
잭슨군의 인구는 25.80%가 18세 미만, 9.10%가 18세에서 24세 사이, 31.10%가 25세에서 44세 사이, 21.50%가 45세에서 64세 사이, 12.50%가 65세 이상이었다. 중앙 연령은 35세였다. 여성 100명당 남성은 92.90명이었다. 18세 이상 여성 100명당 남성은 89.00명이었다.
잭슨군의 가구당 중위 소득은 39277USD였고, 가족당 중위 소득은 48435USD였다. 남성의 중위 소득은 35798USD인 반면 여성은 27403USD였다. 잭슨군의 1인당 소득은 20788USD였다. 가족의 약 9.00%와 인구의 11.90%가 빈곤선 아래에 있었는데, 이 중 18세 미만은 16.40%, 65세 이상은 8.70%였다.
2000년 인구 조사 통계
기본 데이터
인종별 인구 구성
가구 및 가족
수입과 가계
4. 4. 종교
종교 데이터 기록 보관 협회(Association of Religion Data Archives)의 카운티별 신도 보고서(2010년)에 따르면, 잭슨 군은 때때로 바이블 벨트의 북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것으로 간주되며, 복음주의 개신교가 가장 지배적인 종교이다. 잭슨 군 거주자 중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가장 지배적인 교파는 로마 가톨릭(19.51%), 남침례교(17.96%), 초교파 복음주의 기독교인(11.52%)이다.[1]
5. 정부
캔자스시티의 잭슨군 제16순회 법원
잭슨군은 미주리주에서 민주당의 강력한 지지 기반을 유지해 온 지역이다. 미주리주의 다른 지역이 우익으로 기울어지는 상황에서도 민주당 지지세가 굳건하다. 잭슨군에서 마지막으로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승리한 것은 리처드 닉슨이 1972년에 승리했을 때이며, 이는 1932년 이후 유일한 공화당 승리였다. 존 애쉬크로프트는 1988년에 주지사 후보, 키트 본드는 1998년에 상원 후보, 톰 슈바이치는 2014년 주 감사관 선거에서 잭슨군에서 승리한 마지막 공화당 후보이다.[36]
잭슨군이 민주당 성향을 보이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캔자스시티의 존재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8년에는 존 매케인이 캔자스시티 외곽 지역에서 간신히 승리했지만, 버락 오바마는 캔자스시티에서 3 대 1에 가까운 압도적인 차이로 승리하여 62%의 득표율로 잭슨군 전체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36]
잭슨군은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하다. 트루먼은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용사이자 인디펜던스 출신으로, 토머스 펜더개스트의 지원을 받아 잭슨군 판사(County Executive에 해당)로 선출되었다. 이후 미주리주 미국 상원 의원, 미국 부통령을 거쳐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사망 이후 대통령직을 승계했다.[36]
잭슨군은 미주리주 헌법에 따라 자치 헌장을 채택한 두 번째 군이다. 잭슨군 헌장은 1970년에 유권자들에 의해 채택되었고, 1985년과 1986년에 개정되었다.[15]
군의 행정 권한은 풀타임 급여를 받는 직책인 군수에게 부여된다. 군수는 4년 임기로 군 전체 유권자들에 의해 선출된다.[16]
군 검사는 4년 임기로 군 전체 유권자들에 의해 선출되는 풀타임 급여를 받는 직책이다.[17]
조례는 군 입법부에 의해 통과된다. 입법부는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6명은 군 내의 더 작은 단일 회원 선거구에서 선출된다. 3명은 더 큰 선거구에서 "전체 선거"로 선출되며, 각 선거구는 군 전체 유권자에 의해 선출된다. 위원의 임기는 선거 후 1월 1일부터 시작하여 4년이다.[18]
직책
이름
정당
최초 선출
군수
프랭크 화이트
민주당
2016
검사
진 피터스 베이커
민주당
2010
보안관
대릴 포르테
민주당
2018
전체 선거 입법 위원
잘렌 앤더슨
민주당
2018
전체 선거 입법 위원
도나 페이튼
민주당
2022
전체 선거 입법 위원
메건 마샬
민주당
2022
입법 위원 제1지구
매니 아바르카 4세
민주당
2022
입법 위원 제2지구
바네사 허스키
민주당
2022
입법 위원 제3지구
찰리 프랭클린
민주당
2018
입법 위원 제4지구
다론 맥기
민주당
2022
입법 위원 제5지구
지니 로어
공화당
2018
입법 위원 제6지구
션 스미스
공화당
2022
군 보안관은 4년 임기로 군 전체 유권자에 의해 선출되는 상근 급여직이다.[20] 2021년 현재 보안관은 대릴 포르테이다.[21] 보안관 사무실은 군의 교도소도 관리한다.[22]
마이크 샤프 보안관은 2018년 4월 스캔들 속에 사임했다. 그는 성 비위, 공금 유용, 성희롱 혐의로 소송의 대상이 되었다.[23] 그 후 대릴 포르테 보안관이 임명되었다. 그는 최근 캔자스시 경찰서의 서장으로 은퇴했다. 그는 그 해 11월에 정식 임기로 선출되었다.[24]
2019년 중반, 포르테 보안관은 부하 중 한 명이 2018년 5월 추격 중 구경꾼을 다치게 한 혐의로 기소된 다음 날, 과속 추격에 대한 보다 제한적인 정책을 지시했다.[25]
5. 2. 사법 제도
미주리주 순회 법원의 제16 순회 법원은 미주리주 잭슨군을 관할하는 유일한 법원이다. 법원에는 순회 판사 19명과 부순회 판사 10명이 있다. 법원의 모든 판사는 미주리 주지사가 임명하며, 순회 판사는 6년, 부판사는 4년 임기로 봉사한다.[26]
잭슨군에는 지방 법원도 있으며, 판사 1명이 있다. 지방 판사는 군 입법부의 승인을 받아 군 행정관이 임명하며, 임기는 4년이다.[27]
5. 3. 정치 성향
잭슨군은 미주리주에서 민주당의 강력한 지지 기반을 유지해 온 지역이다. 미주리주의 다른 지역이 우익으로 기울어지는 상황에서도 민주당 지지세가 굳건하다. 잭슨군에서 마지막으로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승리한 것은 리처드 닉슨이 1972년에 승리했을 때이며, 이는 1932년 이후 유일한 공화당 승리였다. 존 애쉬크로프트는 1988년에 주지사 후보로, 키트 본드는 1998년에 상원 후보로 잭슨군에서 마지막으로 승리했다. 톰 슈바이치는 2014년 주 감사관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며 잭슨군에서 승리한 마지막 주 전체 공화당 후보이다.[36]
잭슨군이 민주당 성향을 보이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캔자스시티의 존재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8년에는 존 매케인이 캔자스시티 외곽 지역에서 간신히 승리했지만, 버락 오바마는 캔자스시티에서 3 대 1에 가까운 압도적인 차이로 승리하여 62%의 득표율로 잭슨군 전체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36]
잭슨군은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하다. 트루먼은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용사이자 인디펜던스 출신으로, 토머스 펜더개스트의 지원을 받아 잭슨군 판사(County Executive에 해당)로 선출되었다. 이후 미주리주 미국 상원 의원, 미국 부통령을 거쳐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사망 이후 대통령직을 승계했다.[36]
잭슨군에는 여러 교육구, 캔자스시티 공립 도서관, 미드-컨티넨트 공립 도서관 등 도서관, 국립 제1차 세계 대전 박물관 및 기념관을 비롯한 여러 박물관이 있어 다양한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 캔자스시티와 인디펜던스 등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교육 시설이 발달해 있다.
6. 1. K-12 학교
잭슨군의 교육구는 다음과 같다.[37]
교육구명
블루 스프링스 R-IV 교육구
센터 58 교육구
포트 오세이지 R-I 교육구
그레인 밸리 R-V 교육구
그랜드뷰 C-4 교육구
히크먼 밀스 C-1 교육구
인디펜던스 30 교육구
캔자스시티 33 교육구
리'스 서밋 R-VII 교육구
론 잭 C-6 교육구
오크 그로브 R-VI 교육구
레이타운 C-2 교육구
6. 2. 기록 보관소
잭슨군 역사 협회[38]
6. 3. 도서관
캔자스 시티 공립 도서관
린다 홀 도서관
미드-컨티넨트 공립 도서관
6. 4. 박물관
아메리칸 재즈 박물관(American Jazz Museum)
국립 제1차 세계 대전 박물관 및 기념관(National World War I Museum and Memorial)
넬슨-앳킨스 미술관(Nelson-Atkins Museum of Art)
흑인 야구 연맹 박물관(Negro Leagues Baseball Museum)
해리 S. 트루먼 도서관 및 박물관(Harry S. Truman Library and Museum)
해리 S. 트루먼 국립 사적지(Harry S Truman National Historic Site)
잭슨 카운티 교도소 및 보안관 관저(Jackson County Jail and Marshal's House)
국립 장난감 및 미니어처 박물관(National Toy and Miniature Museum)
켐퍼 현대 미술관(Kemper Museum of Contemporary Art)
캔자스 시티 박물관(Kansas City Museum)
미주리 타운 1855(Missouri Town 1855)
바일 저택(Vaile Mansion)
포트 오세이지 국립 역사 랜드마크(Fort Osage National Historic Landmark)
오웬스-로저스 박물관(Owens-Rogers Museum)
미주리주 플레전트힐(Pleasant Hill)의 플레전트힐 역사 협회 박물관에는 잭슨군 남쪽 가장자리의 지역 역사가 일부 전시되어 있다.
7. 공동체
잭슨군에는 도시, 마을, 인구 조사 지정 구역, 미편입 지역이 있다. 도시는 블루스프링스, 벅너, 그레인 밸리, 그랜드뷰 등이 있고, 마을로는 리버 벤드, 시블리, 유니티 빌리지가 있다. 인구 조사 지정 구역에는 블루 서밋, 타스니 레이크스 등이 있으며, 미편입 지역에는 애더턴, 블루 밀스 등이 있다.
잭슨 카운티와 한국 간의 직접적인 관계나 교류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현재 부족하다. 그러나 미주리주와 한국 간의 일반적인 관계를 고려할 때, 잭슨 카운티와 한국 사이에도 잠재적인 교류 가능성은 존재한다. 예를 들어, 미주리 주에는 한국 기업들이 진출해 있으며, 잭슨 카운티의 주요 도시인 캔자스시티는 경제, 문화, 교육 분야에서 한국과의 협력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잭슨 카운티와 한국 간의 관계 발전을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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